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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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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중소기업 상생 문제의 허실
Date : 2016-11-21
Name : 문근찬
Hits : 753

얼마 전 이익공유제에 대한 논란에서 보듯이 현재 한국 사회의 화두는 단연 ‘상생’, ‘공정’, ‘정의’라는 단어들이다. 또 한 때에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이 수십 만 부가 팔렸다. 이런 분위기를 촉발시킨 원인 중에는 공직자 자녀의 특채라는 해프닝과 함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거래가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거세진 점 등이 있었다.
특히 지난 해 9월경 대통령이 공정거래의 문제에 관해, “대기업 때문에 중소기업이 안 되는 건 사실이며, 사회의 격차가 벌어지면 사회 갈등이 심해지고 기업 환경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공정과 정의의 문제가 이슈가 되었다.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반응으로서 당시 모 그룹 회장은 “(상생협력은) 과거 30년간 쭉 해왔기에 사장단도 잘 알고 있다. 다만 부장과장대리급에서 몸으로 피부로 못 느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상의 대화가 오늘날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공정과 정의 사회의 문제를 단적으로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근본 문제의 진단과 핵심적인 해법은 놔 두고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중소기업 거래에서 상생협력은 협력회사에 대한 품질 지도와 교육 등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상생협력이 결정적으로 안 된다고 느끼는 부분은 바로 납품 단가의 책정 부분인데, 이 국면에서 대기업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납품 단가를 후려치는 일이 주기적으로 관행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 그룹 총수의 발언처럼 오래 전부터 상생협력을 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일’에서 대기업은 벌고, 중소기업은 겨우 연명하거나 도태되는 상황이 만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지속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경제 시스템의 자율성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정부의 각종 지원책에 의지하여 스스로 중견기업으로 크기를 주저하며 안주하게 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바로 오늘날 한국 중소기업의 처지를 대부분 설명해준다. 만약 경쟁에 의해 강한 중소기업으로 체질이 강화되었다면 대기업과의 협상력에서 일방적으로 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중소기업이 강해지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고용의 대부분을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경제인(economic man)의 원리’에 의해 그 토대가 세워졌다.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만인에게 유리한 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성립하는 중요한 전제가 있다. 이 점을 피터 드러커는 일찍이 자신의 책 ‘기업의 개념(1946)’에서 지적했는데, 근대 산업 자본주의의 성립을 보장하는 전제 조건으로서 그는 산업 시스템이 실질적인 완전 고용을 보장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들었다.
왜냐 하면 구조적인 실업에 직면한 구성원이 많은 사회에서 그 당사자는 사회를 도저히 공정한 사회로 바라볼 수 없게 되며,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사람들은 자유를 포기하고, 평등을 보장하겠다는 정치 선동가에게 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예가 1930년대의 독일에서 나치정권이 들어설 때 일어났다.
따라서 근본 문제의 하나는 사회 구성원의 완전 고용이다. 그것도 정부의 비대화에 의한 고용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민간 경제에 의한 고용이라야 한다.
한국의 산업화 초기에 공무원으로 취직하면 기업체에 비해서 절반도 안 되는 저임금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공무원이라는 직책이 주는 자긍심이 있으므로 사기업체에 취직할 것인지 공공부문에 취직할 것인지의 선호도는 그런대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공무원이 되려고 수 백 대 일의 경쟁을 치르는 오늘날의 현상을 보면 단지 공무원의 처우가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아졌다며 좋게 볼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 시험에 이다지도 매달리는 사회는 진정 비전 있고 활력 있는 사회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 대기업 위주의 성장만으로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지식경제의 속성 상 산업 사회의 건전성을 보장하는 완전고용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 예컨대 청년실업 문제를 들면, 일부 상위 그룹이 대기업에 취업을 하고 나면 여기서 실패한 사람들은 중소 기업이라도 취업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과 비교하여 그 보상이 너무나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너무 큰 보상의 차이로 자존심을 상하느니 차라리 취업을 포기하고 고시에 몰리게 되는 것이다. 공무원이 아닌 민간영역에서 고용문제가 해결되는 길은 중소기업이 더욱 강해져서 더 높은 보상을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이것이 단 기간 내에 불가능하다면, 즉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면, 논리적으로 남는 방안은 현재 취업자의 인기가 높은 대기업과 공무원의 보상이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 길만이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는 방안일지 모른다. 문제는 강고한 노동조합과 기득권을 갖춘 공무원 층이 형성된 터라 이 철옹성을 깨는 일이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이 근본 문제의 해법이다. 다른 방안은 모두 지엽적이거나 혹은 초가삼간을 태우는 무리한 방안들만 남는다.
예를 들어 또 다른 대안으로, 대기업이 중소기업에게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하는 규제법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중소기업도 지금보다는 더 많은 이익을 확보하도록 함으로써 대기업과의 보상의 차이가 좀 더 줄어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규제에 의한 방법은, 세계화에 의해 국제 간 경계가 사라진 오늘날의 경제체제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기업의 자율을 뺏는 방안은 그나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대기업마저 쇠퇴하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방향으로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사회는 점차 파시즘적 전체주의적 분위기에 매몰되어 국가 주도의 경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대기업과 같이 사회의 중추 기관이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치관이 확산되도록 하는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책임이란 원래 위험을 감수하는 성질의 것이다. 예컨대 어느 대기업이 단기적인 안위를 위하여 불합리한 노동조합의 요구에 굴복한다면 전체 사회적 관행을 후퇴시킴으로써 이는 전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일이 된다. 이런 일은 ‘알면서 해를 끼치지 말라’는 전문가의 윤리에 반하는 일이다. 반면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면 자신의 가치관을 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근본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지엽적인 해법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식으로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나 온전히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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