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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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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자란 어떤 사람들인가?
Date : 2016-10-31
Name : 문근찬
Hits : 1621

흔히 보수주의라 하면 사람들은 수구라며 비아냥거린다. 그런데 보수주의 정치사상을 정리한 에드먼드 버크(1729 ~ 1797)의 설명에 의하면 보수주의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버크는 보수주의를 설명하기 위해서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여 설명했다. 보수주의는 모든 것을 변화 없이 유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하되 사회가 현재와 같이 정착되었다면 거기에는 뭔가 이유가 있는 것이므로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 즉 사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해 온 전통과 핵심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핵심가치란 예를 들면 신, 도덕, 가족, 질서, 책임의식, 신중함의 윤리 같은 것들이다. 프랑스 혁명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가 만개한 계기를 만들지 못하고 사회를 황폐화 시켰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 결과는 역사의 단절과 그 동안 쌓아 온 문명의 쇠퇴였다. 혁명의 결과 곧 가능할 것 같았던 공화정은 실현되지 못하고 사회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가 되었다. 결국 세상을 바꾼다며 기존 질서를 뒤엎겠다는 각종 혁명이니 주의니 하는 것은, 그 의도와는 달리 사회를 역행, 쇠퇴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반면에 보수주의는 세상을 일거에 바꾸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세상을 바꾸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 지키겠다는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보수주의는 세상을 바꾸되 실제로 실행 가능한 것부터 조금씩, 또한 사용 가능한 도구를 써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새로운 제도의 창출이나 사회의 재구성 과정에 미칠 수 있는 인간의 이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한다. 가슴 속에는 이상을 품을 수 있지만 그 실현은 다소 불만족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발을 땅에 붙인 채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 속에 섞여 있는 불만족 요소를 일거에 제거하려다가 오랜 전통으로 이어온 핵심가치까지 내다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회의 발전에 대해 연속성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우리는 보수주의자라고 부른다. 연속성의 원리란 역사 발전이 연속과 변화의 균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마르크스가 도식화 한 것 같이 역사 발전이 어떤 결정론에 의해 단절적으로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에 거부감을 가진다. 보수주의자는 이성의 힘을 과신하는 절대주의를 극도로 싫어하며, 그렇기 때문에 모든 권력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는다.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에드먼드 버크의 연구로 본격적으로 사용된 듯 하지만 역사적으로 시대마다 그 시대의 핵심가치를 수호하는 사람으로서 보수주의적 성향을 갖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생각에 따라 대표적인 보수주의자의 예를 몇 사람 들고자 한다. 이 예는 학술적인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고 그 시대마다 사회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건전하고 풍요롭게 하는 문제에 실질적으로 작동할 만한 해법을 내 놓은 사람이라는 기준을 적용할 것이다.

 

근대 초기의 미셸 몽테뉴(1533 ~ 1592)

프랑스는 유독 잔혹한 혁명이 많이 일어났던 나라다.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던 시기인 16세기에는 30 여 년 동안이나 종교전쟁에 휘말렸다. 가톨릭과 신교 양측은 서로 상대편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살육과 폭행이 자행했고, 단지 소문만을 근거로 마녀로 지목하여 제대로 된 재판도 없이 살인을 저질렀다. 처음에는 신의 뜻을 내세워 종교전쟁을 시작했지만 종교적 열정이 상승작용을 하면서 서로 종말론적 상상 속에서 상대를 멸살하려 했다. 나중에는 잔학상이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자, 오히려 이는 신이 반대편의 악마를 말살하라고 재가한 증거라며 양 측 모두 자기 편의 잔혹행위를 합리화 했다. 이 시대에도 일단의 보수주의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차분한 이성을 유지하려고 애썼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다 보면 조만간 사람들의 분별력이 회복될 것을 믿으며 기다렸던 사람들이다. 몽테뉴 같은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 가혹한 전쟁의 와중에 구교나 신교의 편에 서서 격렬히 싸우는 것이 전체 대중의 일반적인 행동이었지만 몽테뉴는 종교적 열정을 앞세워 상대편을 죽이는 행동은 신앙과 전혀 관계도 없는 열병과 같은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런 신념에 따라 그는 구교와 신교 세력 간의 화해를 위해 교섭 능력을 발휘하고 관용의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리고 당시의 소모적인 시기에 자신이 사회를 위해 효과적으로 기여할 만한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그는 처세술에는 재능이 없고 공부와 저술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여 그 후 20여 년의 기간을 들여 사람이란 얼마나 다양한 것인가를 드러내는 에세라는 거작을 쓰기 시작했다. 이 책은 오래지 않아 프랑스 지식층이 한 권씩 비치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런 균형 감각을 갖고 있는 보수주의자가 없었다면 당시 프랑스는 신교와 구교의 끝 없는 살육이 더 오래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보수주의자는 열정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비겁해 보이거나 무사안일을 추구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이야말로 공허한 이상보다는 실사구시적으로 국가와 국민이 행복해지고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저술가 미셸 몽테뉴를 보수주의자로 분류하는 경우를 본 적은 없지만, 나는 그의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그를 보수주의자로 볼 수 있는 근거라고 생각한다.

  • 그는 주의력을 집중하여 세상의 모든 일, 그리고 자신의 의식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즉 세부적인 모든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당시 그는 대표적인 지식인이었고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처지에 있었다. 공부가 부족하고 생활이 그 사회의 중산층에 훨씬 못 미친다면 보수주의자가 되기 힘든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 그는 스토아주의적인 극기, 신중함의 윤리를 그리스, 로마의 고전을 섭렵하면서 체득했다.

  • 어떤 주의, 주장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생각조차도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정도로 회의주의 철학에 기반하여 그 주장의 의미를 다각도로 검토했다.

  • 그는 법관 시절 법률조항을 주석 붙이듯이 찾아내어 판결하는 풍조를 비판하면서 전체를 총괄하는 능력이 중요함을 주장했다.

  • , 구교 간의 극심한 대립을 보면서, 교리를 놓고 서로 살인하는 것보다는 인간으로서 주어진 천성을 살려 충실히 사는 것이 오히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사람들을 설득했다.

  • 그는 차분하고 온건하게 사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타소라는 천재적인 시인이 자신의 열정 때문에 말년에 실성한 모습을 보이자 이런 식으로 자신을 망쳐버렸으니 얼마나 쓸데 없는 일인가!”라며 화를 냈다. 몽테뉴의 이런 면은 후에 열정을 사랑하는 낭만주의 독자들에게 실망을 주었다.

  • 몽테뉴는, 진정으로 위대한 영혼은 범속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종교적 내전을 체험했던 몽테뉴는 인간의 본성 속에는 극단, 죽음과 혼돈을 향한 충동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흥분과 열정보다는 정돈됨이 진정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20세기의 피터 드러커(1909 ~ 2005)

피터 드러커는 경영학의 비조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초기 저술을 보면 드러커는 경영철학자(management philosopher)였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초기 저작을 살펴 보면 그는 새로이 펼쳐지고 있는 산업사회가 주는 기회와 도전에 대해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오늘날의 사회를 법인 사회라 칭했는데, 이 용어는 대기업이 갑자기 예전의 봉건영주쯤 되는 위치로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결정적인 기관이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경제인의 종말산업인의 미래에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권력을 갖는 기관이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의 문제를 제시했다.

즉 드러커는 경영학자 이전에 경영철학자로서 오늘날의 사회를 경제적으로 지탱하게 하는 결정적 기관으로서의 대기업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 드러커는 '개인적 자유’, '경제적 자유’, 그리고 '제한된 정부의 역할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보수주의 철학을 신봉했고 또 그것을 사회와 기업 영역에서 널리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보수주의 철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드러커는 어린 시절 비엔나에서 고위 공무원이었던 부친의 훈육 아래 행복한 시절을 보냈으나 청년기에 파시즘의 나치가 정권을 잡으려는 시기에 어렵사리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이다. 따라서 드러커는 아담 스미스가 보았던 낙관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가 어떻게 되면 제 기능을 상실하고 파시즘 같은 괴물에게 자리를 물려줄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끊임 없이 고민했다. 이런 고민이 기능하는 사회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그의 평생의 연구 주제가 되었다. 이 주제에 따라 초기의 저작 경제인의 종말산업인의 미래같은 정치경제학적 저술이 이루어졌다. 나중에 기업의 원리와 같은 경영학 분야의 연구에 들어와서도 이 질문은 이어졌다. 예를 들어 기업의 목적을 단순히 이익의 극대화라면서 단기적인 이익을 자랑하고 이에 연동하여 CEO의 급여를 천정부지로 올리고 자랑하는 기업과 사람들을 극도로 무책임한 사례로 생각했다. 이는 신중하지 못한 태도로서 기업의 목적을 잘 못 안 것일 뿐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에게 나쁜 메시지를 주어 기능하는 사회로 가는 길을 어긋나게 할 수 있다. 단기 이익을 자랑하기보다는 드러커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은 기업이 장기적으로 자신이 사회에서 부여 받은 부 창출의 역할을 지속적으로 잘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일, 고객을 창조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33년 초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자와 강사, 그리고 기고자 노릇을 하던 드러커는 나치 치하에서 언제까지나 우물쭈물하다가 그들의 전체주의 정치에 적응하며 살 가능성에 몸서리 쳤다. 그러면서 히틀러가 권력을 쥐게 되면 나는 독일을 떠날 것이다.”라는 결심을 하고는 이를 확실히 할 장치로서 한 권의 책을 썼다. 그것은 독일의 보수주의적 정치철학자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탈(Friedrich Julius Stahl, 1802-1861)을 주제로 한 소책자였다.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탈은 프러시아의 뛰어난 정치가로서, 비스마르크(1815-1898)가 등장하기 직전 시대의 정치가로서, 법률의 지배 아래 자유를 인정하는 철학자였다. 격동의 1930년대 초 드러커가 쓴 책의 프리드리히 율리우스 슈탈: 보수주의적 국가이론과 역사발전이라는 것으로서 이는 나치와 같은 혁명주의에 대한 정면공격이었다. 원고를 마감한 직후 드러커는 곧 독일을 떠났다. 드러커가 프랑크푸르트에 그냥 눌러 있었다면 아마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슈탈의 보수주의 국가이론은 하느님의 영원불변의 진리를 대변하고, 역사발전 역시 하느님의 창조물로서 자율적인 개인의 자유로운 행동의 결과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슈탈은 당시의 정치경제적 제반 문제를 추상적 절대성 같은 개념으로 다루는 데 대해 거의 독단에 가까울 정도로 반대했다. 인간이 희망하는 상상의 세계와 현존하는 실제의 세계는 다른 것이라고 하면서, 슈탈은 당위적으로 발생해야 할 사건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까지 함께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보았고 당시의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입헌왕정을 지지했다. 따라서 보수주의 국가이론과 역사발전은 헤겔식으로 보면 변증법적인 테제와 안티테제 관계이지만, 슈탈은 역사를 연속과 단절이 교차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연속성을 갖는 것으로 파악했다.  

드러커는 슈탈의 연구를 통해 국가가 '전체 국가가 되는 것을 예방해야만 하며, 이는 후일 경제인의 종말에서 이 사회를 기능하는 사회(functioning society)’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또한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무제한적인 자유는, 즉 한 사람을 위한 임의적인 권력은 나머지 모든 사람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라는 주장은 나치 전체주의와 히틀러의 등장과 그 결과 발생할 폭정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소책자는 나치의 눈에 띄어 금서가 되었다. 나중의 일이지만 이 소책자의 분석과 진단과 통찰과 같이 독일은 전체주의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드러커는 나중에 전체주의 뿌리에 대해 설명했는데, 전체주의는 루소의 '이상적 사회에서 시작하여,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마르크스의 '계급없는 사회’,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 즉 나치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그리고 동구의 몰락과 소련의 해체로 '사회에 의한 구제사상이 종말을 맞았다고 분석했다. 이런 혁명가들의 생각은 화려할지는 몰라도 오랜 전통으로 쌓아 온 문명을 파괴하여 원시로 복귀하는 길이다. 반면에 드러커 같은 보수주의자의 생각은 소박하지만 실질적이다. 예를 들어 드러커는, “현대 산업사회의 구성원들이 잘 살기 위해 기업은 어떤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인가, 그리고 사회는 기업을 자율적인 기구가 되도록 어떻게 잘 보장할 것인가? 지식 사회가 된 현재 전문가 그룹인 지식 근로자는 사회를 위해 어떤 공헌을 해야 하는가?” 같은 문제의 해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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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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