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최상위 평가 상품

Call Us Today! 031-902-8533|service@kpics.org
바로 가기...

[문근찬칼럼]
게시글 보기
기능, 기술, 과학 그리고 기업사회
Date : 2016-07-17
Name : 문근찬
Hits : 1019

450만 년 전 오스탈로피테킨이라는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 와 두 다리로 선 이래, 인류는 계속 도구를 만드는 능력, ‘기능(techne)을 축적했다. 그런데 축적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민망할 정도로 그 속도는 더딘 것이었다. 그러다가 조금 속도가 붙었던 때는 기원 전 6000년 전쯤 관개혁명이 일어났을 때다. 관개혁명이란 그 이전의 수렵생활을 청산하고 강가에 모여 촌락을 형성하고 부족국가를 건설했을 때를 말하는데, 이 때 비로소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현상이 나타났다. 강가에서 물을 대고 경작을 하게 되면서 농사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겼다. 분업이 진행되자 지배자와 군인, 도구를 만드는 이, 피지배자 등 신분 계급이 생겼다. 그 이전에는 사냥한 것을 공평하게 나누어 먹던 원시공동체였는데, 이제 신분에 따라 분배가 이루어졌으며, 이 때부터 이라는 것도 만들어졌다.

 

기능의 발달이 늦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기능은 일종의 비밀스러운 비전(秘傳)이어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은밀히 전수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자랑하는 고려자기의 제조법이 전수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때문이다. ‘기능이 보다 체계화 되어 대량으로 전수가 가능하고 확산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이를 기술(technology)’이라 한다. 만약 고려자기를 구워 내는 전체 과정이 원료의 배합부터 숯가마의 온도를 조절하는 과정까지 전체 공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면 이를 기술이라 할 만 하다.

 

오랜 기능의 단계에서 기술의 단계로 넘어간 상징적인 사건으로서 백과전서파 활동이 있었다. 백과전서파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문인 디드로와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달랑베르라는 두 사람이 만나 공동 편집한 백과전서(175172)에 기고하고 간행에 협력한 계몽사상가들을 말한다. 이들은 오랜 역사에 걸쳐 금기 시 되어 오던 일, ‘기능의 체계적인 전수를 위한 노력을 체계화 함으로써 드디어 기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기능에 비해 비할 것은 아니나, ‘과학(science)’도 상당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과학은 기능과는 달리 형이상학의 한 지류로 생겨난 것이라서 애초부터 실생활에 도움이 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즉 과학은 실용과는 거리가 먼 몇몇 사람의 고상한 취미에 지나지 않았다. 만약 오늘날의 인간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이룬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과학이라고 대답한다면 이는 다소 억지 주장일 것이다. 산업혁명기까지의 기술은 과학으로부터 거의 신세 진 것이 없다. 뭔가 발명하고 만들어 내기를 좋아하는 공인(工人)들이 실생활에 이용 가능한 도구를 개발하고 이를 개량하는 일이 한참 진행되고 나서야 그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이 제시되었다. 예를 들어 제임스 와트에 의해 산업혁명을 일으키는 촉매가 되었던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광산과 면방직 공업에 활발히 사용된 지 75년이 지난 후에야 클라우시우스와 켈빈이 증기기관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열역학이론을 내 놓았다.

 

이렇듯이 원래 기술과 과학은 다른 길을 가는 무관한 존재였다. 과학은 생각하고 현상을 이해하는 분야였는데, 이것을 뭔가 만들고 적용하는 데 쓴다는 것은 과학에 대한 모독으로 인식될 정도였다. 하지만 형이상학이라는 도도한 길을 가던 과학이 산업혁명기에 이르러 기술의 눈부신 성과로부터 자극을 받아 그 정체성이 변했다. 기술발전에 과학이 함께 기여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과학은 합리적인 지식의 체계적인 탐구라는 점에서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 지식의 의미가 단지 현상의 이해라는 정신 세계에 관한 것에서, 과학의 초점이 사물의 통제 즉 기술에의 적용 내지 기술을 통한 적용으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과학과 기술이 결합한 결과 오늘날에는 구별 없이 과학기술이라는 합성어가 자주 쓰이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결합한 결과,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한 세기쯤 지난 19세기 중반 이후의 시기부터 눈부신 속도로 기술의 혁신이 일어났다. 이 시기에 발명되어 실용화한 대표적인 제품들의 예를 들자면, 전기, 지하철, 엘리베이터, 전화, 전신, 축음기, 사진, 중앙난방, 배관설비, 초고층 빌딩, 가공식품, 수많은 합성물질에 사용되고 있는 콜타르, 수많은 가전제품, 냉장고, 자동차, 에어컨, 현수교, 영화, 라디오, TV, 타자기, 디젤엔진, 시계, 의학과 보건분야의 발전, 해저케이블, 비행기, 군용 기술 등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도 다양하다. 일 세기 전 18세기의 제 1 차 산업혁명기까지만 해도 기술은 증기기관을 개발한 제임스 와트처럼 걸출한 발명가들의 노력에 의해 개발된 것이어서 어쩌다 하나씩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2차 산업혁명기부터는 수 많은 발명이 이루어져 일년 반에 하나 꼴로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혁신의 주역은 이제 개인에서 대기업 조직이 되었다. 기술과 과학의 결합에 의해 새로운 발명과 새로운 산업이 생기는 현상은 대부분 대기업 조직의 연구소에서 일어났던 것이다. 대기업 연구소에 모인 수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가 함께 신기술, 신제품을 개발한 터라서 19세기 중반 이후의 발명들에 대해서는 어느 특정 개인의 발명품인지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대기업에 의해 사회의 부가 대부분 창출되는 사회를 피터 드러커는 기업사회(corporate society)’라 불렀다. 이제 사실 상 국가의 부는 그 나라에 대기업들이 얼마나 많고 경쟁력 있게 활약하느냐에 달린 시대가 된 것이다. 물론 대기업의 경쟁력은 강한 중소기업들이 좋은 공급자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코멘트 쓰기
코멘트 쓰기
게시글 목록
Content
Name
Date
Hits
문근찬
2016-07-17
1019

비밀번호 확인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