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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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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플리즘의 끝은 어디인가? – 베네수엘라 사례
Date : 2016-09-30
Name : 문근찬
Hits : 3875

나의 고교 동창 한 사람은 모험심이 강한 사나이다. 10 년 전, 그는 베네수엘라에서 새로운 인생을 개척하겠다며 한국을 떠났다. 지난 10년 간 억척스럽게 일하고 일구어서 드디어 카리브해를 바라보는 이층 건물을 장만하여 해변에 휴양 오는 손님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펜션을 꾸미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얼마 전 모험심만으로는 도저히 버텨내지 못할 지경에 이르러 자존심을 접고 다시 한국에 복귀하게 되었다. 아래는 그가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일 년 동안에 겪었던 일을 쓴 내용이다.  

 

(인용 시작)“2014 년 초 부터 2015 8 월 현재 까지, 특히 2015 년의 지난 7 개월은 악몽에 가깝다. 암달러 시세는 7 월 중순 650 BSF 를 기록해서 2014 년 초에 비해서 10 배 이상 가치하락을 했다. 인플레 앞에 하이퍼(hyper)’를 두 세 개 쯤 붙여야 하는 상황이다. 이는 불과 8 ~ 9 개월 남짓 동안에 벌어진 상황인데, 이런 속에서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이곳 주된 먹거리인 Arepa(아레빠)를 만드는 옥수수 가루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처럼 되었고, 밀가루, 설탕은 물론 올해 이곳 가뭄으로 커피 농사가 안되어 커피마저도 없다. 큰 상점 진열대는 텅텅 비었고, 어쩌다 물건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몰려서 아예 가게 문을 닫고 생활 필수품을 조그만 문 틈으로 1 인당 2 ~ 3 개씩 현찰로만 판다. 물건 오는 날 아침에는 뭐가 들어올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은 상점 앞에서 긴 줄을 서서 기다린다. 다행히 원하는 물건이 오면 운이 좋은 편이고, 당장 필요 없어도 나중을 위해서 어떤 물건이라도 사 놔야 한다. 정육점에 고기가 없는 날이 대부분이고, 있다 해도 너무 비싸 예전처럼 사지 못한다. 1 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정육점에 들러 고기 몇 킬로그램씩 사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주 가끔씩, 그것도 고작 1 kg도 안 되게 사가는 모습만 보인다. 고기 역시 주식인데...

 

전기가 안 들어 온다고, 물이 안 나온다고 많은 지역에서 데모를 벌이고, 심지어 주 정부나 국가에서 돈을 받지 못한 버스 회사는 운행을 중단하고 데모를 벌인다. 이곳 데모는 주요 간선도로를 차단하고 타이어를 태우는 식인데 여기에 걸리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오도가도 못하니 저지선 너머에 있는 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차비를 또 내야 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이런 데모 소식은 잘 알려져서 문밖 출입을 삼가면서 그런대로 견딘다.

"그렇지,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앞으로 뚱보는 없어지고 모두 빼빼(Flaco, 플라꼬)가 될거야.", " 이름하여 강요된 다이어트’(Dieta o bligada)라는 거지. 사람들 모두 건강하게 될 거야. 하하하"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쨌든 먹을 것뿐 아니라 휴지니 비누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 조차 구하기 힘든 현실이고 작고 영세한 상점이나 음식점은 문을 닫은 지 오래다. 자기 쓸 것도 구하기 힘든 판에 남한테 팔 물건이 있을 리가 없다. 대형 상점은 그런대로 버티기는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올 것 같다.

이렇게 암달러 시세가 치솟아 볼리바르화 BSF가 가치하락을 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그 동안 정권을 잡았던 차베스는 석유 채굴에서 오는 달러만 믿고 사람들을 현혹하는 포퓰리즘으로 일관한 결말을 지금 한꺼번에 겪고 있는 것이다. 세계 유가의 하락으로 정부 수입의 원천인 석유 판매대금이 줄어든 것이 경제 파탄의 출발점이 되었고, 차베스의 독재가 사라지면서 무서울 것 없는 부패한 관료들이 그나마 달러를 빼돌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돈다.  

여하튼 작년 11 월 이후 1 년이 채 되지 않는 세월 만에 베네수엘라는 변해도 너무 변해버렸고 그 변화의 끝을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차베스가 죽기 전 7 ~ 8 년간 암달러 시세는 그런대로 3 배 정도의 아주 완만하고 점진적인 상승세이고 나름 안정된 수준이었는데 차베스가 죽은 후 1 년이 지나자, 2014 10 , 11 월부터 2015 8 월 현재 변동폭은 30 배에 달한다. 그러니 변동폭과 시간의 비례성을 찾는 것이 무의미해졌다. 완전히 딴 세상이 된 것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10 년 전 1 US $ 암시세는 3 BSF, 차베스가 죽은 시점인 2 년 전에는 9 BSF, 그리고 작년 11 20 BSF 에서 시작해서 8 월 현재 650 BSF이니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너무 터무니 없는 나라 꼴이 되었다. 조만간 1,000 BSF 간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BSF 의 급격한 가치하락은 수입물자 부족으로 이어져 생필품 부족은 더 커지고 중소형 가게들과 일부 대형상점도 문을 닫아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까운 각종 상점들(Punto Fijo, 뿐또 피호)은 관광객이 오지 않아 40 % 이상이 문을 닫았다. 무엇보다도 1 년 전만 하더라도 쌀, 국수(파스타), 마가린, 식용유, 옥수수가루 정도는 상점 진열대를 채우고 있어서 당장 필요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수량만큼은 구입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 월부터는 그나마 그런 기회가 없어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먹을 것조차 시장에서 사라졌다. 있어봐야 농산물 먹거리뿐이다.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지인에게 전화하니 , 지난 한달 동안 고기, 쌀을 사지 못했다. 아무거나 먹을 것을 사라."고 한다. 물건이 오는 매주 수요일이나 금요일은 길거리 상점 앞에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서고, 다른 요일에도 언제 올지 모르는 기본 생필품을 기다리는 줄이 일상의 풍경이 되었다. 전쟁 통에 배급 받는 것처럼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끝 줄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빈손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아야 할 때가 가장 안쓰럽다. 여기저기서 나는 5 시에 나왔네, 6 시에 나왔네하는 소리가 들린다. 더 나아가 일부 의약품이나 생필품이 아닌 상품을 살 때 지문을 찍게 하고 있고, 주민등록 번호 끝자리 수에 의해 요일 별로 구매할 물건을 한정시키고 있다. 매주 반복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견뎌내는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베네수엘라 10 년 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모든 순간이 소중했지만 특히 아디꼬라의 생활은 더 각별하게 다가온다. 2 층 방문을 열면 카리브해와 맞닿아 지은 명물 Casa Madre와 등대가 보이고, 다른 쪽 벽 창을 열면 카리브해가 내 집 정원처럼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방문이나 창을 열면 조금 축축한 기운이 도는 상쾌한 바닷바람이 불어 1 층 방과 달리 에어컨을 켜지 않아도 더위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쾌적하다. 나는 지금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 속의 주인공처럼 앉아 있다. 이 집을 이층으로 확장하고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겨우 두 달 남짓 보내고 이곳을 떠나야 한다. “시멘트만 일찍 구했으면 2 ~ 3 년 전부터 2 층 방에서 생활했을 터 인데…”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어쩌랴. 그게 인생 아닌가? 아니 할 말로 올해 이곳에서 살자고 마음먹는다면 굶어 죽을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아니, 그보다도 선량한 사람들을 이런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위선적인 정치꾼들을 생각하면 하루도 견디기 어려울 만큼 싫어졌다.

이곳 휴가철은 8 15 일 전에 시작해서 9 15 일까지 한달 남짓한 기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825일 현재 휴가철이 시작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단 한 가족도 우리 집에 오지 않고 있다. 작년만 하더라도 주말엔 방이 모자랐고 주중에도 2 ~ 3 개 방은 찼었다. 지금도 어떤 여관엔 사람들이 오기도 하지만 그나마 에어컨이 없는 싼 방만 찾고 있다. 먹고 살 물건 사기도 힘든 판에 수 십 배의 인플레이션 속에서 휴가 예산을 짤 수가 없는 것이다.

몇 년 전 한국에 들어가서 딸 혼사를 마치고 다시 이곳에 돌아오려 할 때, 한 친구가 살만큼 살았으니 이제 돌아와 네 처와 아이들과 함께 살아라."했다. 그 때 내 대답은 사나이가 이왕 칼을 뽑았으니 썩은 무라도 자르고 오겠다. 기다려라." 는 것이었다. 나이 오십 줄 들어 이곳 사람들과 부대끼며 스페인어 처음 배우고, 헌 집을 고치고 2 층을 아디꼬라 집을 완성했으니 일단 썩은 무는 잘라 본 셈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이곳에 올 때 마음 먹었던 썩은 무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되었지만

아주 먼 후일 내 가족이나 내 친구들 중 그 누구라도 어쩌다가 아디꼬라를 여행하는 기회가 생기게 된다면, 아무개가 베네수엘라에 10년을 살았고, 마지막 3년에는 카리브해가 바라보이는 해변에 예쁜 집을 만들었다고 기억해 준한다면 더 없이 고마울 것이다.”(인용 끝)

 

이 글을 읽으며 포퓰리즘의 끝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궁금했었는데 조금 더 감을 잡게 되었다.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우리보다 좀 느긋한 편이라니까 저 정도인데도 참고 살지만 만약 우리가 저 지경에 빠지게 되면 한참 전에 이미 폭동에 내란이 났을 것이다.

같은 남미 아르헨티나에도 비슷한 포퓰리스트가 있었다. 1946년 이후 두 번에 걸쳐 집권한 후안 페론은 부인 에바 페론의 인기 덕에 집권하고 노동자 임금인상과 복지 확대로 인기를 누렸으나, 아르헨티나 경제의 기반을 완전히 붕괴시켰다. 페론주의의 나쁜 유산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당이나 제도를 통하지 않고 직접 대중에게 호소하는 인민민주주의를 부추겨서 민주주의 시스템도 타락시켰다. 에바 페론은 고위층이 모이는 연회를 주최해 놓고 방송 카메라가 비치는 가운데 자신의 반지와 목걸이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한다고 '솔선수범'을 했고, 이에 참석한 귀부인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따라서 기부하도록 만드는 등 대중인기에 영합하는 사람이었다.

나라가 거덜났어도 이런 포퓰리즘의 뿌리는 워낙 사람들의 머리에 각인 되어 아직도 에바 페론에 대한 향수는 대단하다. 에바를 찬양하는 영화도 만들어졌고, 그 속에 나오는 "Don't cry for me Argentina"라는 노래는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런 사례를 보면 사람이란 이성적이기 보다는 그 반대로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2012년 포퓰리즘 광풍에 이어 지금도 청년수당 등 선심공약이 난무하고 있고, 2017 대선에는 더 심해질 것이다.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에서 보듯 포퓰리즘은 마약과 같아서 한번 중독되면 국가든 개인이든 헤어나기가 힘들다. 이런 마약으로 표를 얻고자 하는 정치가는 얼마나 사악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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