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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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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즈의 정의론
Date : 2016-09-20
Name : 문근찬
Hits : 2486

내가 평소 자유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의문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시장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자유주의는 경제 성장의 유일한 길임에 틀림 없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알아들을 내용에 대해 못 들은 척 하고, 오히려 지속가능 하지 않은 약속에 몰려 드는 것일까?”

나 자신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이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 1997년 말 IMF 사태 때 나는 거의 실직할 뻔 했다. 다행히 일 주일 정도 만에 그룹 내 다른 업무를 찾아 이동할 수 있었지만, 이런 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일 주일 간 나는 거의 지옥과 같은 절망감 속에 살았다. 낮에 내 발은 땅에 닿아 있는지 공중에 떠 있는지 인식되지 않은 채 약간 넋이 나가 있었다. 당시 큰 애가 19 살부터 줄줄이 3 남매가 있었다. 과연 이 식구들을 어떻게 부양해야 할 것인가? 외환위기 속에 대기업마저 구조조정을 하는 판국에 옮겨 갈 수 있는 직장은 있기나 할 것인지?

이런 경험을 겪으면서 나는 어떤 조직이나 회사를 창업하여 일으키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중추적인 리더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 덕분에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살 수 있는 것이었다. 동시에 왜 사람들은 자유주의적 경쟁을 그리도 싫어하고, 가능하면 사회가 개인의 삶을 책임져 주는 사회주의적 경제체제에 미련을 갖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조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주 역설적이게도 어려운 시기일수록 이론적으로는 자유주의가 맞는 길이라고 이해를 해도 정서적으로는 사회주의에 쏠리는 것이다.

이 중에서 본인 스스로 나태하고 일하기 싫지만 사는 것은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싶은 사람은 논외로 하자. 그 정도로 날강도 같은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사회주의 쪽에 은근히 끌리는 이유가 또 있다고 본다. 존 롤즈의 정의론은 이런 의문에 한 가닥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롤즈는 정치철학자로서 계약론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사회 정의에 대한 독특한 입장을 제시하였다. 만약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고 공정성이 보장되는 사회적 헌법을 만든다고 하면 어떤 모습일까? 우선 기본적인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배분되는 것을 첫째 조건으로 삼을 것이다. 언론 및 결사의 자유, 양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인신의 자유, 사유 재산 소유의 자유, 체포와 구금으로부터의 자유, 직업의 자유 등 기본적인 자유가 없이 다만 먹고 살 수 있게 해 준다는 사회를 좋아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것이 최 우선적으로 보장되고 나면, 롤즈는 사회적 직위(직업)에 대한 기회는 평등하게 배분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단 이 때의 평등 배분은, ‘가장 적게 가진 자가 가장 큰 혜택이 가도록배분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차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평등이다. 예를 들어 경영능력이 없는 사람이 무조건적인 평등을 내세워 회사 CEO를 맡고 높은 보수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 그 역할을 하게 하면 능력 없는 사람(가장 적게 가진 사람)에게도 자신이 CEO를 해서 회사를 망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

그러면 왜 롤즈는 정의의 원칙으로서 '가능한 대안들의 결과 중 최악의 것 중에서 최선을 보장하는 대안'을 선택해야 한다고 보았는가? 롤즈는 정의의 원칙을 합의하는 당사자들은 자신의 목적 실현을 추구하되 반드시 필요한 기본적 자유는 원할 것이고, 그리고 나서는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마저 침해 받을 수 있는 정도의 모험을 감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보다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을 최악의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위험한 원리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를 롤즈의 최소 극대화의 원칙이라고 하는데, 이 원칙에 따르면 최대의 이익은 누리지 못하지만, 최악의 경우에도 인생을 포기할 만한 나락에 빠지는 선택은 회피한다.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과급 나눠 먹기’, ‘보편 복지의 추구등도 어쩌면 자신이 최악의 상황에 떨어질 위험을 작당하여 회피하기 위한 행위진지도 모른다. 또한 경제 민주화니 사회적 기업을 내세우는 분위기도 롤즈의 정의론과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공정한 분배라는 사회주의적 분위기는 위험을 회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속성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인지 자유주의 국가에 살고 있는 시민들조차 개개인의 마인드는 은근히 사회주의에 끌리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영국은 아담 스미스라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시조를 낳고, 이어서 칼 마르크스라는 사회주의 혁명 선동가가 오래 살았던 나라인데, 영국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마르크스의 무덤은 중요한 명소가 되어 있지만 에딘버러에 있는 아담 스미스의 무덤은 그냥 잊혀진 곳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근세 이후 현대의 역사는 겉모습과는 달리 저변에는 사회주의 마인드가 지배하는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런 마인드가 언제 현실적인 시험에 이르는가? 6.25 때와 같이 기본적 인권이 경각에 달리고 죽고 사는 문제가 걸렸을 때 비로소 진정한 선택이 이루어진다.  

6.25를 겪기 직전 시기 동아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그 당시 한국인 대다수인 70~80%의 사람들이 막연히 사회주의를 선호하는 성향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6.25 전쟁을 겪으면서, 사회주의가 이상은 좋아 보이지만 이를 실천해야 하는 현실 정치의 세계에 들어 오면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체제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그 결과 소련의 사주를 받던 북한의 체제를 탈출해 월남한 사람은 960만 북한 인구의 16%에 달하는 약 150 만 명 이상이었고, 남한 체제가 싫다고 월북한 사람은 약 1,800만 남한 인구의 0.5%에 불과한 10만 정도에 불과했다. 6.25 전쟁 직후 목숨 걸고 자유주의를 택한 비율이 사회주의를 택한 비율에 비해 인구 대비 30 배나 된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평소 막연히 사회주의적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은 자유가 보장될 때 가질 수 있는 마인드인 것이다. 그러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해진 상황에서는 30 1의 큰 차이로 사람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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