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국가를 부정하는 민족지상주의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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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6-08-14
Name : 문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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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서 살펴본 대로, 지난 60여 년에 걸쳐 한국이 이룩한 성취는 대단한 것이지만 아직 미완성이고 토대가 안정되지 않아 불안한 상태이다. 근대국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개인으로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근대적 시민이란 정말이지 그리 어려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공헌하고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오늘날 근대화 완성의 문턱에서 정체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근대적 시민의 역할을 하지 않고 그 반대되는 행태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근대 시민의식을 훼손하는 요인들을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 중 한 부류로 민족 지상주의자를 들고 싶다. 민족 지상주의자가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이 민족(nation)이라는 정서적인 개념을 내세우면서 국가(state)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반대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오늘날 시리아 난민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이웃의 아랍 국가와 민족이 다른 것은 아닐 수 있겠지만 시리아 사람들은 난민이 되어 작은 배를 타고 목숨 걸고 지중해를 건너고 있다. 그 인접의 국가들은 같은 아랍계 민족이라며 보호해주었다면 시리아 국민들이 그렇게 목숨 건 탈출을 감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민족의 개념은 언제 생겼을까? 삼국 시대에는 물론 신라, 백제, 고구려가 같은 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을 것이다. 말 조차도 일부 통역이 필요할 정도라는 주장도 있다. 고려 시대에도 개경과 같은 도시가 아닌 전국의 산촌에는 여진족의 후예들이 많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민족이란 개념은 사실 조선조가 끝나고 나서 근대 사상이 전해질 때 생겼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의 조선 시대만 해도 왕가, 사대부, 평민, 노비 등 신분의 개념은 있었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근대 사상이 전해질 즈음에 서양의 nation state 개념이 알려졌고, 더욱이 일본의 침탈로 나라를 잃게 되었을 때 민족의 개념은 중요하게 부각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라를 잃은 마당에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언어와 전통을 공유하는 민족이었을 터이다.
그 후 해방이 되었으나 한반도는 남과 북의 두 나라로 갈라지게 되었으니 이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의 지상과제가 된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국가는 같은 정치적 이념을 가진 사람들의 연합체라는 국가의 개념을 생각해 보면 통일이 무슨 의미인지 명확해진다. 한국의 자유경제체제로 통일하든가 북한의 김일성 왕조체제로 통일하든가 둘 중의 하나이지 그 어중간한 통일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일성 왕조 체제는 우리가 어렵사리 60여 년을 달려 온 근대국가의 건설을 거꾸로 돌려 다시 조선시대로 되돌아간 체제인 것이다. 그럼에도 민족 지상주의자들은 이런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민족을 국가 의 위에 있는 개념으로 올려 놓는다. 즉 국가의 정체성이야 어찌 되었든 한반도의 민족이 통일만 하면 된다는 발상이다.
민족을 국가 위에 놓는 사람들의 특징은 이성에 비해 정서가 과잉인 사람들이다.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국가를 지켜 내는 일은 냉철한 이성을 요하는 일임에도 이들은 감정을 앞세워 외교관계를 그르친다. ‘평화통일’을 자주 입에 올리는 사람도 민족지상주의자로서 정서가 과잉인 유형의 하나다. 통일이란 당연히 독재자의 질곡에서 북한의 동포를 구해내는 일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반되는 두 체제를 적당히 얼버무려 통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체제는 이성적으로 차분히 생각해 보면 역사 상 있어 본 적이 없고, 만약에 이런 시도를 한다면 참혹한 내란을 거쳐 어느 한 체제로 흡수될 것임에 틀림 없다. 현재로서는 감성을 앞세우는 민족지상주의자가 되기보다는 대한민국이라는 근대국가를 소중히 여기는 냉철한 이성이 요구되는 때다. 그래야만 북한의 동포들을 질곡에서 구해낼 기회도 잡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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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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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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