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최상위 평가 상품

Call Us Today! 031-902-8533|service@kpics.org
바로 가기...

[문근찬컬럼]
게시글 보기
한국 공교육 이념에서 실종된 ‘근대 개념’
Date : 2016-08-07
Name : 문근찬
Hits : 3173

한국의 공교육은 언제부터인가 교육목적이 모호해지면서 근대의 정신에서도 멀어졌다. 공교육의 목적은 당연히 그 국가가 추구하는 철학을 반영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한국의 공교육 어디에서도 근대 시민을 키우려는 지향성이 보이지 않는다. 교육목적에서 근대의 개념이 사라진 것은 1990 년대 초부터였다. 그 당시 민주화 운동 이후 등장한 새 정부가 한 일을 한 마디로 모든 기존 가치의 해체였다. 그 이전에 한국경제의 견인 역할을 해 왔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별 대안 없이 해체되었고, 혁신을 한다며 근대국가적 교육이념도 해체되었다. 1949년 제정된 교육법, 그리고 그 정신에 따라 1968년에 제정된 국민교육헌장에는, 능력에 따른 소질의 계발, 애국애족, 과학입국, 근검노작의 정신 등 근대국가를 세우기 위한 덕목들이 살아 있었다. 민주화 시대가 되었는데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만들어졌던 교육이념이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에서였는지, 기존의 교육법에 들어 있었던 교육의 목표는 사라지고, ‘창의력 개발인성 함양이라는 모호한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인성 함양이 그렇게 강조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국에는 무고죄 등 인성의 밑바닥을 드러내는 범죄가 만연하는 것은 웬일인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창의력이니 인성이니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들은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시민의 덕목과는 무관한, 중세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고리타분한 표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근대 시민으로서의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서 새로 태어난 개인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신체의 자유와 재산권 개념이 도출된다. 그래서 개인이 땀 흘려 노력해서 얻은 재산은 당연히 그 사람이 전적으로 권리를 갖는 것이며, 국가든 무엇이든 침탈할 수 없다는 재산권의 개념이 중요해졌다. 또한 평등은 자유의 개념과 동전의 양면으로서, 조물주가 모든 인간에게 이런 자유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인간의 소유물이 될 수 없고, 신 앞에 모두 평등하다는 가치가 도출된다. 이때의 평등은 일종의 조건의 평등으로서, 누구나 똑같이 분배를 받아야 한다는 식의 결과의 평등 - 오늘날 복지론자들이 주장하는 평등 - 과는 다른 것이다. 이런 근대의 정신이 스며든 교육이란 인성교육이 아니라 다양한 전문 분야의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중세시대의 계급사회에서 신분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나 의미가 있다. 지금은 전문적인 직업 교육을 이수한 젊은이들이 졸업과 동시에 자신의 전문 분야에 취업하여 곧바로 남다른 성취를 하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의 수많은 대학에서 비슷비슷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젊은이들이 졸업 후 취직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또 취직을 했다 해도 제 역할을 하려면 신입사원 교육을 처음부터 새로 시켜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경제사를 전공하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가 현행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를 바탕으로 내용연구를 한 결과, 한국의 공교육에는 오직 그럴듯한 인성 함양만이 강조되고, 근대 시민의 정신을 정의하고 키우기 위한 목표는 빠져 있다고 한다. 초등학교 바른생활 교과서에서 개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제시되는 단어들을 추려 보면, 정리정돈, 공공질서, 정직, 자주, 절제, 책임, 효도, 준법, 성실, 정직, 용기, 전통과 문화 지키기, 평화(전쟁은 불행), 관용, 노력, 반성, 양보, 질서, , 자긍심, 정의, 사랑, 자비 같은 단어들이었다. 요컨대 우리의 초등학교 도덕교육에는 근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은 빠져 있고, 마치 조선시대의 소학이나 명심보감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의 덕목들을 열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덕목은 조선시대에도 가르쳤을 것이고, 수령체제 북한에서도 가르칠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이다. 반면에, 근대국가의 시민을 키우는 덕목이라 할 자유, 개인, 평등, 행복의 추구, 재산권 같은 내용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초등학교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이 어떤 이념 아래 건국된 국가라는 설명도 없으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애국가, 태극기, 무궁화 같은 상징이나, 이순신, 신사임당 같은 위인전 속에 암시되는 존재로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이래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현재 우리가 지향하는 근대국가가 무엇이고, 그 속에 사는 시민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통해 국가,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가치관이 생겨날 것 같지가 않다. 바른생활 교과서에는 대한민국이 어떤 정체성을 갖는 국가라는 것은 드러나지 않는 반면에, 효도나 가족, 민족의 가치 같은 것은 강조되고 있는데, 하지만 이때 강조되는 가족은 전통적 부족, 씨족의 혈연적 가족이지 근대적인 가족이 아니다. 근대적인 가족이란, 성년이라는 자유인이 되기 이전에 보호 받는 공동체이며, 18세 성년이 되면 가족으로부터 독립되는 개인을 전제로 한다. 성년이 되면 자신의 책임아래 독립하는 자유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두렵고 힘든 과정이겠지만 원래 자유란 스스로 책임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렇게 근대의 개념이 없는 교육을 오랫동안 받아서인지,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나름대로 소질에 따라 전문성을 갖추어 사회 속에서 제 역할을 하는 것보다는 소위 출세했다고 평가 받을 수 있는 각종 고시에 연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자식에게만큼은 사농공상의 직업군 중에서 가능하면 ()’에 가까운 신분 속에 편입되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지금도 어느 지방에서 누가 고시에 합격이라도 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며 법석을 떤다. 이 축하의 표현에는 처럼 세상을 호령할 수 있는 자리에 올랐다는 저속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법조계에 발 들여 놓은 젊은이라면 자칫 자신은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사회의 일원이라는 생각보다는 고시에 합격하는 순간 신분이 다른 계층에 편입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한 양반 관료가 신분이 낮은 백성을 수탈하던 풍토가 오랫동안 구한말까지 지속되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그런데 법조계에서 회자되는 전관예우라는 단어를 보면, 물론 이런 관행은 일부 인사들의 일탈이라고 믿고 싶지만, 과연 그런 관행에 연루된 사람들이 근대국가의 시민의식을 갖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그런 일을 자행해도 되는 신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사회는 복잡화 되고 요구되는 일자리는 다양해졌는데, 한국의 학부모들과 자녀들은 여전히 오직 수능시험 점수로 대표되는 성적 순으로 전공보다는 대학 간판을 결정하려고 한다. 자식의 적성과 장래의 행복을 위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주로 학원가에서 유포되는 수능점수 별 합격 가능 대학의 환산표에 근거하여 대학과 학과를 선정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지난 오랜 세월 동안 철학이 부재한 공교육에 그 탓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럼에도 오늘의 교육을 책임진다는 관료들은, 교육정책이란 곧 대학 입시제도를 이리 저리 뜯어고치는 것인 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출발점에서부터 문제가 있다.

 

주) 본 주제로 한국경제에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080880851

코멘트 쓰기
코멘트 쓰기
게시글 목록
Content
Name
Date
Hits
문근찬
2016-08-07
3173

비밀번호 확인 닫기